“자녀 보육료 달라”…모국서 헌법소원 낸 재일동포

“자녀 보육료 달라”…모국서 헌법소원 낸 재일동포

입력 2015-11-17 09:42
수정 2015-11-1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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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순·김명향 씨 “다문화가정·난민도 받는데…평등권 침해”

한국 남자와 결혼해 모국에 정착한 재일동포 3세 주부들이 자녀의 보육료 지원 제외는 차별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일본에서 특별영주권자로 살아온 김여순(36)·김명향(34) 씨의 국적은 대한민국. 이들은 ‘토종’ 한국인인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국민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보육료와 유아학비를 거절당하자 지난 5일 법무법인 로고스를 통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다문화가정 자녀나 난민 자녀에게도 지급되는 보육료를 특별영주권자라고 해서 제외한 것은 재외동포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이다.

두 사람은 1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첫마디로 “일본에서 수많은 차별을 견디면서도 국적을 지켜온 게 큰 자부심이었는데 한꺼번에 무너지는 느낌”이라며 “늘 동경하던 모국이 재일동포를 차별하면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한단 말이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보육료 지원 정책에 따르면 만 0세는 40만 6천 원, 만 1세 35만 7천 원, 만 2세 28만 5천 원, 만 3세부터 만 5세까지는 22만 원을 지급한다. 여기에는 난민도 포함되며 다문화가정의 경우에는 최대 59만 1천 원까지 주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부모가 국적이 다르면 자녀에게 만 18세까지 이중국적을 부여하고 있으며 특별영주권자도 마찬가지로 자녀에게 재외국민의 신분이 세습된다.

특별영주권자는 지난해까지 주민등록번호가 없었다. 일본에서 출생했기에 모국의 주민번호가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에서 각종 권리를 부여하는 기준이 주민등록번호라는 사실이다. 공기관에 서류를 제출할 때도 필수 기재 항목일 뿐 아니라 주민번호가 없으면 취학통지서도 못 받고 보건소의 무료 접종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이 기준이 차별이라는 지적이 받아들여져 정부는 올해부터 국내 거주 재외국민도 신청하면 주민번호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은 주민번호를 받았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도 당연히 주민번호가 있다.

그럼에도 올해 보육료 지급을 신청하자 거절당했다. 그 이유는 정부가 정한 ‘2015 보육료·양육수당 지원 대상 선정 기준’ 가운데 ‘주민등록법 6조 1항 3호(재외국민)에 따라 주민번호를 발급받은 자’를 보육료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정 때문.

6조 1항 3호에 따른 주민번호라는 것은 지난해까지 주민등록이 없던 사람들에게 새로 주어진 것을 가리킨다. 특별영주권자를 비롯해 거주국의 영주권을 받은 사람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주민등록등본을 떼 보면 아이의 주민등록번호 뒤에 ‘재외국민’이라고 표시가 돼 있습니다. 엄마가 특별영주권자인 것을 밝힌 것이죠. 구청에서는 특별영주권을 포기하면 보육료 지원을 해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친정 식구가 모두 일본에 있고 혼자 한국으로 시집온 건데 포기하라니요. 더욱이 재일동포가 어떻게 쟁취한 특별영주권인데 정말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김여순)

“4년 전 큰아이 보육료를 신청했을 때는 주민번호가 없다고 거절당했습니다. 이제는 받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안 된다니 대체 무엇이 바뀐 거죠? 여기서 이방인 취급을 받는 것만도 서러운데 내 아이에게까지 차별이 이어지는 것만은 막고 싶습니다.”(김명향)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와 해방 후에도 일본에 남게 된 조선인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1947년 일본 국적을 박탈했고, 차별과 동화정책으로 민족성 말살에 앞장서왔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에 이들은 식민지 시대 이전의 국호인 조선을 따와서 ‘조선적’(朝鮮籍)으로 칭했다. 재일동포 사회는 현재 조선적을 유지하는 사람은 소수이며 대부분 한국 국적으로 변경했다. 일본 정부는 재일동포에게 1991년부터 특별영주권을 부여했고 비로소 별도의 신고 없이 출입국이 가능해졌다.

다른 지역의 재외동포와 달리 유독 재일동포의 보육료 지원 여부가 문제가 된 사정이 여기에 있다. 다른 지역의 동포들은 거주국 국적을 취득했거나 국내 주민번호가 남아 있어 보육료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김여순 씨는 일본에서 조선적으로 살다가 중학교 때 가족 모두가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대학 시절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그는 학과에서 한국 유학생 언니와 친해지면서 모국을 처음 접했고, 졸업 전 한국 여행을 계기로 2002년에 이화여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지금의 남편은 유학 시절 만났다.

“모국에 처음 와서 서울 시내를 걷는데 거리의 모든 간판이 한글로 쓰여 있고 사람들도 모두 한국말로 이야기해서 마음이 편해지고 벅차오르더군요. 그때 느꼈죠. ‘아, 여기가 나의 조국이구나.’ 그래서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어져 유학을 왔고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김명향 씨도 고등학교 시절 가족 모두가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조선적으로 사는 것에 특별히 불편함을 느낀 것은 아니지만 남북한 중 한 곳을 택하라면 당연히 한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패션모델로 활동한 그는 일본에 부는 한류를 활용해 활동 영역을 넓히려면 제대로 우리말을 구사해야겠다는 생각에 2005년 건너와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서 연수를 받았다. 연수 시절 한국 생활에 흠뻑 빠져들었던 그는 졸업 후 한국 회사에 취직했고 2008년에 결혼했다.

두 사람은 ‘한국 남성과 결혼한 재일동포 여성의 모임’에서 만났다. 자녀의 나이가 같아서 친해졌고 보육료를 못 받는 처지도 비슷해 서로 고민을 이야기하다가 의기투합했다.

김명향 씨는 “한국으로 시집온 재일동포 중에는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아서 모두 몇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다”며 “우리처럼 보육료를 못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차별로 고통받는 사람이 계속 생겨나겠다 싶어서 앞장서게 됐다”고 밝혔다.

보육료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는 김여순 씨는 “세금도 남들과 똑같이 내고 있고 사내인 큰애는 나중에 크면 당연히 군대도 가야 하는 한국인”이라며 “재일동포를 바라보는 모국의 시선이 이런 건가 싶으니까 한국행을 택한 게 후회가 되기도 했다”고 울먹이며 호소했다.

만 3∼5세 자녀의 보육비를 지원하는 교육부의 유아교육정책과 관계자는 “거주국에서 영주권을 받은 재외국민은 주민번호가 부여되어도 기본적으로 제외 대상”이라며 “영주권을 받은 것은 해당 국가에서 영구 거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므로 이를 포기해야 지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고스의 민형기 상임고문 변호사는 “보육료를 두고 특별한 이유 없이 재일동포 자녀만 배제한 것은 헌법에 명시된 평등권·모자 보건권·경제권의 명백한 침해”라며 “소송인의 자녀가 만 4살인데 만 5세까지만 혜택을 볼 수 있으므로 헌법소원 재판을 조속히 추진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자는 요청에 두 사람은 “엄마가 재일동포인 게 알려지면 아이들이 유치원에서도 따돌림당할 것 같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아이들이 어려도 자신이 차별받는다는 것은 다 알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라고 생각하느냐?’ ‘한일 축구전이 벌어지면 어느 쪽을 응원하느냐?’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중 누가 더 잘한다고 보느냐?’였습니다. 저희는 한국 사람인데 당연한 걸 물을 때마다 억장이 무너집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재일동포를 일본인으로 취급하면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합니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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