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필요’ 전문가 경고에도 검사없이 원료 교체 정황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낸 것으로 꼽히는 제품이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원료를 교체하면서 필요한 흡입독성 실험을 생략하면서 개발된정황이 드러나고 있다.27일 검찰 등에 따르면 옥시는 1995년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준비하면서 독일 회사의 제품을 수입하려다 원료인 ‘프리벤톨(Preventol) RI-80’을 들여와 이를 포함한 ‘옥시 싹싹 가습기 당번’을 개발했다. 프리벤톨 RI-80은 가습기 사용 시 잔여물 등을 세정하는 용도의 물질이다.
당시 옥시는 독일 회사 측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중개 역할을 한 독일 유명 화학회사 부설연구소 소속 교수에게서 서신을 받았다. “해당 물질을 가습기에 사용하려면 별도 흡입독성 실험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이 서신은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됐다.
옥시는 이에 따라 프리벤톨 RI-80에 대한 흡입독성 실험을 거쳐 독성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제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그러나 이 원료를 포함한 제품을 사용하면 부유물이 남아 물에 떠다닐 수 있다는 점이 발견됐다. 옥시는 즉각 고객 불만 등을 우려해 2000년께 원료 물질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인산염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그러나 원료 물질을 바꾸는 과정에서는 흡입독성 실험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많은 사망자를 낸 것으로 꼽히는 ‘옥시싹싹 뉴 가습기 당번’이 이렇게 출시됐다.
검찰은 독일 교수의 서신이 가습기를 통해 공기 중에 뿌려져 흡입하게 되는 물질은 흡입독성 실험을 거쳐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보고 있다. 옥시가 제품 출시 전 원료에 대한 실험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도 생략했다는 점이 입증되면 옥시의 업무상 과실치사 내지는 과실치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신현우 전 대표와 연구부장 최모씨 등 옥시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중인 검찰은 옥시가 프리벤톨에 대해서는 실험을 진행하고 전혀 다른 물질인 PHMG 인산염은 하지 않은 이유 등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