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슴 펴고 큰길 한 번 다니지 못해”…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 노환으로 별세

“평생 가슴 펴고 큰길 한 번 다니지 못해”…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 노환으로 별세

박상연 기자
박상연 기자
입력 2024-10-06 16:18
수정 2024-10-0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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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상대로 대법서 승소
“내 평생 뒷길로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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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할머니가 일본 군수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대법원 최종 선고를 앞두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18.11.29.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김성주 할머니가 일본 군수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대법원 최종 선고를 앞두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18.11.29.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내 평생 가슴 펴고 큰길 한 번 다녀보지 못하고 뒷질(뒷길)로만 살아왔다”던 할머니는 끝내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일제강점기 일본 군수기업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 동원됐던 김성주 할머니가 별세했다. 95세.

6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전날 경기 안양시에 있는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29년 9월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순천남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44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 공장으로 끌려갔다. 당시 열네 살이었던 김 할머니는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해서 중학교도 갈 수 있다’는 일본인 담임 교사의 권유와 강압에 일본으로 떠났다.

공장에서 철판 자르는 일을 하다 왼쪽 검지가 잘린 김 할머니는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해방 뒤 고향에 돌아와서도 ‘일본에 끌려갔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인신 모욕과 구박을 견뎌야 했다.

김 할머니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미쓰비시중공업 등을 상대로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끝내 패소했고, 이듬해 일본 정부는 뒤늦게 김 할머니 등 소송 원고들에게 일본 국민연금(후생연금) 탈퇴 수당 명목으로 99엔(당시 기준 1000원 정도)을 지급했다.

김 할머니와 피해자들은 2012년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도움을 받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국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6년여 만인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안양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7일 오후 1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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