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병상률 12% 불과…공공보건 위기 대처 어려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빠른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지 못한 데에는 우리나라의 취약한 공공의료체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전체 병상의 다수가 민간병상인 탓에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의료기관들이 정부 통제 하에 일사불란하게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3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인구 1천명당 공공병상수는 1.19병상으로 비교 대상 24개국 가운데 가장 적었다.
24개국 평균 1천명당 공공병상수(3.25병상)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민간병상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인구 1천명당 병상수가 9.56병상으로, OECD 조사대상 31개국 가운데 일본 다음으로 가장 많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체 병상의 12%만이 공공병상으로, 인구 대비 병상수가 감소 추세인 OECD 다른 회원국과 달리 전체 병상수는 늘어나면서도 공공병상 수준은 제자리이다.
실제로 이번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곳도 대부분 민간병원이었다.
메르스 감염이 의심되는 격리대상 환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국공립병원만으로는 격리병동으로 활용할 만한 1인실도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어쩔 수 없이 공공병원에만 의존하다 보니 공공병원의 의료진이 메르스에만 매달리면서 공공병원을 주로 이용하는 저소득층 다른 질환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할 무렵에도 민간병원이 환자 치료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공공의료 확충의 필요성이 수없이 제기됐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크게 개선된 점이 없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민간의료기관에는 공공의료기관 수준으로 철저한 의심환자 신고와 치료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환자가 발생하거나 격리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의료진 감염이 없다고 해도 환자들이 피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메르스의 추가 확산을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모든 병원의 응급실을 격리병동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민간병원에 이를 강제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공공의료체계의 부실이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도 “메르스뿐만 아니라 앞으로 또 발생할 수 있는 재난적 감염질환 등 공중의료 위기에 대응력을 높이려면 전체 병상 중 공공병원의 비중을 대폭 늘리고 민간병원의 공공성을 높이는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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