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몸’은 역사 안에서 시간성과 시대성을 안고 있다. 시인의 개인사는 개인 안에 머물지 않으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역사의 실증이다. 시인의 ‘몸’은 그리하여 시대에 민감하게 사람들의 감성을 시로 기록한다. 시는 시인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언어의 비늘(鱗)’이 분명하지만, 시인의 ‘몸’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다. 시인의 ‘몸’은 현재라는 시대와 시간을 영유하는 독자, 혹은 동시대인으로부터 기인한다. 이는 시인의 ‘몸’이 우주적 시간 안에서 시대성을 초월함과 동시에 역사 안에서 한 시절을 대변하는 ‘말’(語)을 습득한 유일한 몸, 위대한 소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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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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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소설가
시인을 꿈꾼다는 것은 이러한 우주적 실체에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이나, 시대의 말을 습득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시인의 몸이, 시인의 말이 아무 일이나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는 이 땅에 있었고, 역사에서 사라진 수많은 시인을 기억하면서 이들이 부여받은 시간과 시대의 숙명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반대로 시대로부터 만들어지지 못한 시인의 ‘몸’이 실패한 ‘말’을 습득하는 것을 우리는 오랜 시간 지켜봐 왔다. 시대에 거슬러 실패한 말의 역사로 남은 시인들을 기억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실패한 말의 몸을 가진 시인들로 우리 문학사는 채워져 있고, 군부독재의 역사 안에서 시민들의 바람이나 열망과는 반대로 진행되는 말에 우리는 시의 역사를 빼앗겼다. 시인의 말이 현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시인의 현재와 시대는 우주적 시간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대부분의 시인은 이 사실을 몸으로 알고 있으나, 일부의 시인들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현재의 시간을 사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서정주라는 역사가 있다. 그는 유일하게 완성된 시인이다. 모자란 시적 감수성으로 그의 시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소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시가 어떻게 변모되고 완성되어 가는지 보여주는 유일한 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시는 위대한 것이 사실이지만, 말의 비늘이 떨어져 나온 ‘시인의 몸’이 위대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시인의 ‘몸’이 없고 ‘말’만 있는 시인은 시인인가 아닌가. 시인의 몸이 가진 우주적 초월에는 실패한 것이 아닐는지.
최근에 한국시인협회에서 기획한 시집 ‘사람-시로 읽는 한국 근대인물사’(민음사)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시인이 되지 못하고, 부여받지 못한 숙명을 한탄하며 저잣거리 군상의 얘기나 다루는 소설가 나부랭이가 되어버린 필자의 감상이 뭐 대수로울까마는, 가슴 밑바닥까지 내려앉는 침울함이 크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 논의의 대부분은 ‘누가, 누구’에게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그것은 중요한 논제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숙명은 ‘왜’인가 하는 것이다.
참여한 시인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이 시집이 ‘왜’ 만들어졌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시집 발간의 이유와 실체로 의심되는 사이의 괴리감이 크기 때문이다. 몇몇은 ‘왜’ 이러한 논쟁이 생길 것임을 예상했음에도 책을 발간해야만 했는지, ‘왜’ 시인이 시대적 소명을 모른 척하면서까지 논쟁의 중심에 서야만 했는지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 정반대로 시집 출간이 시대적 소명이라 여긴다면 그것마저 뚜렷하게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닐까.
2013-05-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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