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는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상징
내달 전 세계 이슬람 신도 300만 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슬람 성지 메카 순례인 하지를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자국에서 급증하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통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지난해 여름 에볼라 사태 때는 발원지인 서아프리카의 한 농촌에서 미국 텍사스까지 번지는 데 불과 수주 걸렸고,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바이러스가 홍콩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이동하는 데는 십수 시간이면 충분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귀향하는 군인들은 스페인 독감을 전 유럽 대륙으로 전파시켰다.
최근 좀비 감염병으로 인해 인류 문명이 몰락하는 상황을 다루는 공상과학 영화, 드라마, 책이 유행하는 것은 에볼라, 메르스 등의 사례의 영향이 크다. 예방이나 치료법을 알 수 없는 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가능성에 대한 집단공포가 배경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 폴리시는 23일(현지시간) 좀비 감염병이 세계를 덮친 상황을 가정해 전염병의 세계적 확산과 국내, 국제 질서에 미치는 영향들에 관한 모델을 연구하는 연구자들과 인터뷰를 통해 ‘좀비 세상’ 대처법을 물었다.
이 매체가 전한 연구자들의 결론은 단기적으론 시베리아 등이 피난처가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론 안전한 곳이 없다는 암울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의 자원 입수 경로와 질병 전파 경로가 동일하다는 것”이라고 ‘좀비의 수학적 모델링’을 쓴 오타와대 조교수 로버트 스미스? (?는 실제 법적 이름의 일부)는 지적했다. 따라서 “우리가 깨달았을 때면 이미 좀비 역병이 지구 전체에 퍼진 상태일 것이고, 확산 방지를 위해선 세계 경제는 폐쇄될 수밖에 없다”는 것.
스미스?의 모델에선 좀비 질병으로 인해 사회기반 시설과 공급체계가 무너지고 정부는 감염을 어떻게 차단하고 불안한 시민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데,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인 대응은 “공격적 격리”이다.
즉 나라와 나라, 도시와 도시 간 교통 등 모든 것을 차단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시민의 일상생활을 극도로 제약하는 것이다.
스미스?는 “궁극적으론 공공선이 개인의 인권보다 우선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격리에 저항하려 할 것인데, 그럴 경우 정부는 자국민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해야 할까? 그게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선 아무래도 이런 단호한 결정이 어려울 것이므로 권위주의 국가들이 좀비 확산 대처엔 유리할 수 있다.
문제는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나면 식량에서부터 의약품, 원자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부족해져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게 좀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오염된 물, 영양부족, 그리고 때로는 사람”이 생명을 위협하게 되고 “식량부족은 폭동으로 이어져 질서붕괴가 좀비만큼이나 인류를 죽이게 될 것”이라고 스미스?는 예상했다.
영화, 비디오게임 등으로도 만들어진 좀비 소설 ‘세계대전 Z’의 저자 막스 브룩스는 자신의 소설에서 상대적으로 고립돼 자급자족적인 쿠바를 그나마 안정된 곳으로 그리고, 항공교통의 중심지인 아이슬란드를 좀비 천국으로 묘사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에서 좀비 발생시 확산경로 예상지도를 만들어 발표한 코넬대 물리학과 박사과정의 맷 비어봄은 “좀비 공격을 당한 나라의 지속력은 인구 크기와 사회기반 시설의 강도”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의 예상 지도에 따르면, 미국이 좀비 천지로 바뀌는 데는 불과 28일 걸린다. 또 인구가 밀집한 도시들은 몰락하고, 대도시 사이에 낀 지역들도 여러 대도시에서 좀비들이 몰려 듦에 따라 최대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좀비 묵시록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지역은 반드시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이 아니라 모든 다른 밀집지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비어봄은 설명했다.
이 모델에선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와 이곳에 있는 대도시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집트와 이란, 나이지리아의 대도시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러시아가 가장 유리하다. “시베리아와 러시아의 극동 지역이 아마 가장 좋은 피난처일 것”이라고 비어봄은 결론을 내렸으나 중단기적으로만 그럴 뿐 “장기적으론 모든 곳이 결국 좀비로 넘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린 폴리시는 “이 모든 것은 가정이고 좀비는 실재하지 않으며 현 의료 인프라가 지금까지는 질병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좀비로 상징되는 것이 지속적으로 대중문화를 지배하고 인류의 집단공포와 공명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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