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의 의거 기념일을 하루 앞둔 25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역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는 아침 일찍부터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작년 1월 개관한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입구의 모습.
연합뉴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전시된 안 의사의 유묵.
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작년 1월에 개관한 이 기념관은 안 의사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역사 내 플랫폼 바로 옆에 있는 귀빈용 대합실 일부를 개조해 건립됐다.
200㎡ 규모의 기념관 입구는 하얼빈역의 옛 입구 모습을 그대로 축소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기념관 내부로 들어서면 입구 바로 오른쪽에 배치된 안 의사의 흉상과 동양평화론에 대한 소개가 눈에 들어온다.
안 의사가 순국하기 전 뤼순(旅順)감옥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에 대해 기념관 측은 ‘안 의사의 구상은 특정국가의 이익을 벗어나 지역경제 공동체와 블록 경제론, 공동 방어론을 주장한 것이었다’는 주석을 달았다.
기념관 왼쪽 벽에는 ‘안중근이 조선반도 근대사에 저명한 독립운동가로, 1879년 9월2일 현재의 조선(북한) 황해도 해주부에서 태어났다’는 설명을 시작으로 안 의사 가계도와 가정교육, 신앙 등 유년기 관련 자료들이 전시됐다.
이어 일제 침략기의 시대적 상황과 안 의사가 의거를 준비한 ‘하얼빈에서의 11일간의 행적’이 10여 장의 사진과 해설로 소개됐다.
오른쪽 벽에는 안 의사의 의병 투쟁과 단지(斷指)동맹, 최후의 유언 등 안 의사가 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업적과 사상을 조명한 사진과 사료가 전시됐다.
이날 오전 기념관을 찾은 하얼빈 시민 징루(靖綠·61)씨는 “평소 잡지나 책을 통해서 안 의사의 행적을 알고는 있으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 이곳을 찾았다”며 “단독으로 이토를 저격한 항일의거는 탄복할 만 하다”고 말했다.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하는 장면을 수묵화로 그린 대형벽화도 인상적이다.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하다’(安重根擊殺伊藤博文)이란 제목과 함께 국가 1급 화가 권오송(權伍松)이 그렸다는 설명이 붙었다.
특히 기념관 안쪽에서 관람객이 통유리창 너머로 하얼빈역 1번 플랫폼에 있는 안 의사의 이토 저격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
과거 플랫폼 바닥에 삼각형 형태의 타일만 깔려 있어서 처음 방문한 이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은 저격 현장 바로 위 천장에 ‘안중근 이등박문 격살 사건 발생지 / 1909년 10월 26일’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기념관 방명록에는 지난 22개월 동안 이곳을 다녀간 각국 관람객들의 방문 소감이 적혔다.
한국인과 중국인 외에도 북한인, 일본인도 적지않게 다녀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오카사키(岡崎)에서 온 와카야마(若山)씨는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접하고 감명받았다’며 ‘의사 안중근은 동북아시아 연합의 선구자’라고 적었다.
일본 도쿄(東京) 출신의 스가노(菅野)씨는 ‘의사 안중근의 총격지를 방문하고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가해행위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기념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6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 의사가 한중 양국민의 존경을 받는 역사적 인물인 만큼 하얼빈역의 의거 현장에 기념 표지석을 설치하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의 요청을 받은 중국 정부는 표지석 설치 수준을 넘어 기념관 건립으로 통크게 화답했다.
중국 외교부는 2013년 11월 브리핑에서 안 의사에 대한 평가를 요구받고 “안중근 의사는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저명한 항일의사”라고 밝혔다.
그러자 일본 관방장관이 같은 해 11월 안 의사 표지석 설치 문제와 관련해 안 의사가 범죄자라는 주장을 펴 우리 정부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지난 4월 퇴직한 캉웨화(康月華) 전 안중근기념관 관장은 “안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이 최근 영토분쟁 및 역사 갈등을 빚는 동아시아 각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안 의사의 사상을 더욱 기리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작년 1월 개관한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입구의 모습.
연합뉴스
연합뉴스

연합뉴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전시된 안 의사의 유묵.
연합뉴스
연합뉴스
200㎡ 규모의 기념관 입구는 하얼빈역의 옛 입구 모습을 그대로 축소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기념관 내부로 들어서면 입구 바로 오른쪽에 배치된 안 의사의 흉상과 동양평화론에 대한 소개가 눈에 들어온다.
안 의사가 순국하기 전 뤼순(旅順)감옥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에 대해 기념관 측은 ‘안 의사의 구상은 특정국가의 이익을 벗어나 지역경제 공동체와 블록 경제론, 공동 방어론을 주장한 것이었다’는 주석을 달았다.
기념관 왼쪽 벽에는 ‘안중근이 조선반도 근대사에 저명한 독립운동가로, 1879년 9월2일 현재의 조선(북한) 황해도 해주부에서 태어났다’는 설명을 시작으로 안 의사 가계도와 가정교육, 신앙 등 유년기 관련 자료들이 전시됐다.
이어 일제 침략기의 시대적 상황과 안 의사가 의거를 준비한 ‘하얼빈에서의 11일간의 행적’이 10여 장의 사진과 해설로 소개됐다.
오른쪽 벽에는 안 의사의 의병 투쟁과 단지(斷指)동맹, 최후의 유언 등 안 의사가 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업적과 사상을 조명한 사진과 사료가 전시됐다.
이날 오전 기념관을 찾은 하얼빈 시민 징루(靖綠·61)씨는 “평소 잡지나 책을 통해서 안 의사의 행적을 알고는 있으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 이곳을 찾았다”며 “단독으로 이토를 저격한 항일의거는 탄복할 만 하다”고 말했다.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하는 장면을 수묵화로 그린 대형벽화도 인상적이다.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하다’(安重根擊殺伊藤博文)이란 제목과 함께 국가 1급 화가 권오송(權伍松)이 그렸다는 설명이 붙었다.
특히 기념관 안쪽에서 관람객이 통유리창 너머로 하얼빈역 1번 플랫폼에 있는 안 의사의 이토 저격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
과거 플랫폼 바닥에 삼각형 형태의 타일만 깔려 있어서 처음 방문한 이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은 저격 현장 바로 위 천장에 ‘안중근 이등박문 격살 사건 발생지 / 1909년 10월 26일’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기념관 방명록에는 지난 22개월 동안 이곳을 다녀간 각국 관람객들의 방문 소감이 적혔다.
한국인과 중국인 외에도 북한인, 일본인도 적지않게 다녀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오카사키(岡崎)에서 온 와카야마(若山)씨는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접하고 감명받았다’며 ‘의사 안중근은 동북아시아 연합의 선구자’라고 적었다.
일본 도쿄(東京) 출신의 스가노(菅野)씨는 ‘의사 안중근의 총격지를 방문하고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가해행위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기념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6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 의사가 한중 양국민의 존경을 받는 역사적 인물인 만큼 하얼빈역의 의거 현장에 기념 표지석을 설치하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의 요청을 받은 중국 정부는 표지석 설치 수준을 넘어 기념관 건립으로 통크게 화답했다.
중국 외교부는 2013년 11월 브리핑에서 안 의사에 대한 평가를 요구받고 “안중근 의사는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저명한 항일의사”라고 밝혔다.
그러자 일본 관방장관이 같은 해 11월 안 의사 표지석 설치 문제와 관련해 안 의사가 범죄자라는 주장을 펴 우리 정부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지난 4월 퇴직한 캉웨화(康月華) 전 안중근기념관 관장은 “안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이 최근 영토분쟁 및 역사 갈등을 빚는 동아시아 각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안 의사의 사상을 더욱 기리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