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하라 게이지 ‘20세기 일본의 역사학’ 출간
”일본은 국민 교화를 위해서는 신화를 사실처럼 가르치는 등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역사 왜곡을 불사했습니다.”자국의 역사 왜곡 문제를 지적한 일본 학자의 저서가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나가하라 게이지(永原慶二.1922∼2004) 전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최근 출간된 ‘20세기 일본의 역사학’에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역사학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했다.
역사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이 책은 게이지 교수의 마지막 저서로, 일본이 급속한 우경화를 보이던 2003년 처음 출간돼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책은 근현대사 인식은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치적 성향을 띠고 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에 따라 역사인식 문제 또한 역사 재검토의 무한한 반복이며 인식을 둘러싼 논쟁의 연속으로 귀결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가의 가치관이나 이에 근거한 역사상이 아무리 다양해도 학문으로 성립되려면 사실 자체를 왜곡하거나 외적인 요인에 의해 자의적으로 사실을 취사선택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 게 역사학의 대원칙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원칙일뿐 현실에서는 외적인 힘에 의한 자의적 왜곡이 종종 벌어진다.
게이지 교수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 이른바 ‘대동아회의’ 등을 그런 사례로 든다.
그는 ‘대동아회의’와 관련해 “1943년 11월 도조 히데키가 ‘대동아공영권’의 나라와 괴뢰정권 등을 모아 도쿄에서 회의를 연 것을 들어 일본이 이들을 해방시키려 했다는 내용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하지만 도조 히데키는 조선의 독립은 물론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의 괴뢰정권 성립조차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역사관과 역사인식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이뤄진 의도적 역사 왜곡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으며,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줄곧 학문 연구와 역사교육은 별개라는 방침을 취해 왔다는 설명이다.
또 사실을 왜곡하더라도 국가에 불리한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는 역사교육관이 전후까지 이어지면서 1982년 검정 교과서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판이 쏟아졌다고 게이지 교수는 말한다.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국가권력과 국가주의자들이 역사교육을 영유하도록 내버려두는 일은 한 걸음도 양보할 수 없다”며 “자국의 역사 인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엄밀한 실증과 철저한 이론을 토대로 역사 속의 사회 구조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 역사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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