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한 줄 알았던 ‘충무공 유물’ 박물관서 찾아

분실한 줄 알았던 ‘충무공 유물’ 박물관서 찾아

박록삼 기자
입력 2015-04-07 00:04
수정 2015-04-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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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계 별책’ 해양박물관서 확인… 임진왜란 당시 왕실에 올린 상황 보고

장군의 유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잠시 몸을 감췄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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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박물관에 소장된 ‘충민공계초’(忠愍公啓草). 1928년 일제가 촬영해 남긴 ‘장계 별책’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국립해양박물관에 소장된 ‘충민공계초’(忠愍公啓草). 1928년 일제가 촬영해 남긴 ‘장계 별책’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1928년 일제가 이순신 관련 유물을 조사하던 중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장계(狀啓) 별책’을 국립해양박물관에서 2년 전 취득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장계 별책’은 이순신이 임진왜란 당시 왕실에 올린 보고서 모음이다.

이순신 전문가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6일 “2013년 4월 국립해양박물관이 문화재 매매업자에게서 공개 구입한 ‘충민공계초’(忠愍公啓草)를 조사한 결과 그동안 분실된 것으로 학계에 알려졌던 ‘장계 별책’이 맞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7권의 난중일기와 서간첩 ‘임진장초’(壬辰狀草) 등 이순신 친필 기록은 국보 제76호로 지정돼 있다. 그동안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던 ‘장계 별책’은 국보 유물들과 별개로 덕수 이씨 충무공 종가에 전해지던 또 다른 장계 초본이다.

노 소장은 해양박물관이 제공한 ‘충민공계초’ 자료를 분석하던 중 1928년 일제가 ‘장계 별책’ 일부를 촬영한 원판 사진이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관돼 있음을 확인했고, 그 사진을 ‘충민공계초’와 대조한 결과 둘이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충민공’은 이순신이 1643년 ‘충무공’의 시호를 받기 전까지 쓰이던 시호다. 노 소장은 “1959년 난중일기와 임진장초, 서간첩이 국보로 일괄 지정될 당시 ‘장계 별책’이 빠졌으니 당시 별책은 이미 충무공 종가에 없었을 것”이라며 “일제가 필름으로 촬영한 1928년 이후부터 1959년 사이 없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충민공계초’ 첫 장에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신 이순신 삼가 올림. 임진년’(全羅左道水軍節度使臣 李舜臣謹 壬辰年)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순신이 임진왜란 발발 직후인 1592년(선조 25) 4월 15일부터 1594년(선조 27년) 4월 20일까지 선조와 세자 광해군에게 올린 전쟁 상황 보고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2015-04-0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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