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참전 군인들 발병, 고엽제와 인과관계 증명 안돼”

“베트남 참전 군인들 발병, 고엽제와 인과관계 증명 안돼”

홍인기 기자
홍인기 기자
입력 2013-07-13 00:00
수정 2013-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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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성여드름 피해자 39명만 인정… 대법, 파기환송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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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헌신했는데…
나라를 위해 헌신했는데… 1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고엽제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 취지의 판결이 나온 뒤 고엽제 전우회 회원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미국 다우케미컬과 몬산토 등 고엽제 제조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고엽제와 질병 간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 핵심 쟁점이었다. 또 한국 법원의 재판 관할권, 고엽제 제조물 결함 여부, 손해배상 소멸 시효 완성 여부가 최종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쟁점으로 작용했다.

 12일 대법원은 14년을 끌어 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고 패소 취지의 파기환송을 선고하면서 “염소성 여드름을 제외한 당뇨병과 폐암, 버거병 등의 질병은 고엽제 노출이 원인이라는 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먼저 대법원은 1, 2심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 법원의 재판 관할권과 고엽제 제조물의 결함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재판부는 “제조사들은 고엽제에 포함된 다이옥신 성분이 인체에 미칠 유해성에 관해 충분히 조사, 연구하고도 위험 방지를 위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 제조물인 고엽제의 설계상 결함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한국 참전 군인이 피해자인 점, 실제 질병 등 손해가 발생한 장소도 국내라는 점 등을 근거로 국제재판 관할권이 한국 법원에 있다고 봤다.

 손해배상 소멸 시효와 관련해서는 1, 2심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질병이 생긴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 후유증 환자로 판정받아 등록하기 전까지는 병의 원인이 고엽제 노출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며 고엽제 후유증 환자 등록일부터 손해배상청구권 행사가 가능한 것으로 봤다. 다만 등록일부터 3년이 지나 가압류나 소를 제기한 경우는 손해배상청구권 시효가 소멸했다고 봤다.

 그러나 핵심 쟁점인 베트남 참전 군인들에게 발병한 질병과 고엽제 사이의 인과관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가 아닌 사기업에 배상 책임을 지게 할 만큼 법적으로 인정되는 의학적, 과학적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당뇨병, 폐암, 비호지킨임파선암, 전립선암, 호지킨병 등 참전 군인들에게 생긴 질병 대부분은 고엽제 노출에 의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참전 군인에게 발생한 질병은 발생 원인 등이 복잡다기하고 유전, 체질 등의 선천적인 요인과 음주, 흡연, 식생활 습관 등의 후천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비특이성 질환”이라면서 “이들 질병이 베트남전에서 살포된 고엽제 노출에 따른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2심에서는 미국 국립과학연구소의 보고서를 근거로 호지킨임파선암, 후두암 등 11개 질병에 대해 고엽제와의 역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2심 판단의 근거가 된 미국 국립과학연구소의 보고서는 미국 정부가 보훈 정책상 작성한 것으로 참전 군인을 상대로 충분한 역학 조사를 해 작성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판단을 종합해 원심에서 일부 승소한 5227명 중 시효가 소멸되지 않은 염소성 여드름 피해자 39명에 대해서만 고엽제 노출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앞으로 제조사를 상대로 한 피해 보상은 사실상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과관계를 인정받은 염소성 여드름 피해자의 경우 다우케미컬 등 제조사의 특허권 등 국내 재산에 대한 가압류 신청 등으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국내 재산이 없는 경우 미국 법원에 직접 손해배상 소송이나 집행 소송 등을 제기해야 한다.

 앞서 참전 군인들은 “유해물질인 다이옥신이 포함된 제초제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며 1999년 9월 고엽제 제조사를 상대로 5조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고 소멸 시효가 지났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지만, 2심 재판부는 “상이등급에 따라 1인당 600만∼46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베트남 전쟁 기간 중 정글 제거와 시야 확보 등을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된 고엽제에는 각종 암, 신경계 손상, 기형 유발, 독성 유전 등 질병을 유발하는 독극물인 다이옥신이 포함돼 있어 각종 후유증을 야기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올 3월 기준으로 고엽제 후유증 피해자는 4만 1940명(후유의증 4만 7807명)이고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2세도 65명에 달한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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