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전쟁포로협회 역사속으로

美 한국전쟁포로협회 역사속으로

입력 2014-08-05 00:00
수정 2014-08-0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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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평균 85세… 활동 어려워 공식해산 뒤 비공식 후손 모임

1976년 미국 내 6·25전쟁 포로 출신들이 설립한 ‘한국전쟁포로협회’가 3일(현지시간) 공식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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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현지시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전쟁포로협회 해단식에서 협회 관계자들이 사용했던 태극기를 현지 한인회에 기증하고 있다.  한국전쟁유업재단 제공
3일(현지시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전쟁포로협회 해단식에서 협회 관계자들이 사용했던 태극기를 현지 한인회에 기증하고 있다.
한국전쟁유업재단 제공


협회는 이날 켄터키주 루이빌의 한 호텔에서 전쟁 포로 출신 95명과 가족 등 4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해단식을 열고 38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윌리엄 노우드 회장은 “계속 모임을 갖고 싶지만 회원 대다수가 고령화돼 더 이상 활동할 여력이 없다”며 해단을 선언했다.

협회는 6·25전쟁 당시 2년 6개월간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던 노우드 회장 주도로 설립됐다. 지옥과 같았던 북한 수용소 생활을 함께한 동지들을 위로하면서, 귀환하지 못하고 숨진 동지들의 넋을 기리고 그 가족들을 돕자는 취지였다. 협회는 한때 회원 수가 1200명에 달했지만 해단식에는 95명만 왔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85세에 달한다. 회원은 38선 전투와 장진호 전투, 홍성 대학살, 평양 북쪽 운산 전투 등에서 체포된 미군들로, 기나긴 북송 과정을 거쳐 압록강 유역 중공군 포로수용소 6곳과 북한군이 관리하는 수용소에 분리 수용됐다. 참전용사 기록 활동을 하는 한국전쟁유업재단 한종우 이사장은 이날 40명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들은 수용소까지 가는 과정이 지옥과 같았고, 수용소 생활 역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기 힘들었다고 회고했다”며 “포탄 파편이 등에 박혀 피를 흘리다가 추위로 얼어붙어 피조차 흘리지 못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협회는 해산했지만 회원들은 내년부터 비공식적 후손 모임을 갖기로 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2014-08-05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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