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군 머리, 귀, 코 보냄” 日 문서 발견

“조선군 머리, 귀, 코 보냄” 日 문서 발견

입력 2011-02-04 00:00
수정 2011-02-0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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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66) 소장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진주 목사 서예원(徐禮元 미상∼1593) 장군의 머리를 일본에 보냈다는 문서(주인장 朱印狀)를 발견했다고 4일 주장했다.

 김 소장은 최근 한일문화연구를 위해 일본 기타큐슈(北九州)를 방문했으며 이곳에 있는 구로다 마사나가(黑田政長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공격한 왜장) 가문이 소장한 문서 속에서 주인장을 찾았다고 밝혔다.

 주인장에는 ‘금일(今日) 청취한 머리,코,또는 생포한 숫자.首(수) 拾三(13),鼻(비) 貳拾五(25),生捕(생포) 貳人(2명) 위 건을 확실히 보냈습니다.慶長貳年(1593년) 8月(월)17日(일)’이란 내용이 적혀 있다.

 주인장에는 서예원 장군이란 글은 없지만 1907년 일본 도쿄대학교 호시노 히사시 교수가 발표한 ‘진주성 싸움에서 승리한 왜군은 서예원 성주의 머리를 상자에 넣어 일본으로 보내 도요토미 대불전 앞에 묻었다.’란 논문 내용을 볼 때 주인장 내용 중 수(首)에 서예원 장군이 포함됐다는 것이 김 소장의 주장이다.

 특히,김 소장은 지금까지 왜군이 귀를 베어 갔다는 문서는 발견됐지만,머리에 관한 문서는 이번이 처음이며 서예원 장군이 1593년 5월 29일 순국한 기록과 당시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는 선박 편이 3개월 정도 소요되는 사실을 생각하면 서예원 장군이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예원 장군의 머리는 교토(京都) 귀 무덤에 묻힌 사실을 관련 문서로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서예원 장군은 1591년(선조 24년) 김해 부사로 부임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과 공방전을 벌이다가 패주했다.제1차 진주성싸움에서 김시민 목사를 도와 왜적과 항전했고 1593년 진주 목사로 부임했으나 제2차 진주성싸움에서 순국했다.

 김 소장은 “정부에서 서예원 장군의 머리 무덤에 대한 환국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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